과일의 단 맛을 내는 주성분은 과당입니다. 동면을 하면서 겨울을 잘 넘기기 위해 지방을 잔뜩 축적해야 하는 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단 과일이나 꿀이지요. 지방을 늘리려면 비계가 많이 든 고기를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뜬금없는 과일을 먹으려고 그리도 애를 쓸까요? 잘 익은 과일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과당은 대부분 지방으로 변환되어 내장이나 피부 아래 깊숙이 저장해 놓았다가 음식을 섭취하지 못할 때 요긴하게 꺼내서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드물었을 때는 곧바로 지방으로 변해 기아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고마운 과당이 풍요로운 현재에 이르러서는 온갖 병, 특히 통풍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사냥하며 떠돌던 인간이 섭취하는 전분의 양은 만 년 전까지는 하루 80~100 그램 정도였으며 이 양도 가공되지 않은 복합 탄수화물 형태였습니다. 반면 요즘의 서구식 식사는 350~600 그램 정도를 섭취하여 무려 500~750 퍼센트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의 질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다량의 식이 섬유와 항산화제 같은 식물성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는 대신 고도로 가공되어 칼로리는 있으나 영양은 없는 탄수화물을 주로 먹고 있습니다.
수천년 전만 해도 하루에 과당을 20그램 정도 섭취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하루에 무려 80그램이나 먹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상 많은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고 통풍의 급증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사람이 당을 좋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수백만 년을 거치면서 당을 탐닉하도록 유전자가 변이되어 왔으니까요. 다른 맛있는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당은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약물이 작용하는 동일한 부위에 강력한 자극을 줍니다. 이들 마약과 당은 비슷한 중독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 인간의 조상은 수백만 년 전부터 아주 오래 동안 열대 지방에 살았고 여기저기 흔하게 널려 있는 과일을 통해 당을 쉽게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추운 유라시아로 이주하면서 활엽수림 지대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고 일년 중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일부 유인원에게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면서 특정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과당을 아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과당은 아주 일부만 대사되어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신속하게 지방으로 저장되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유인원은 생존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잠깐 과일이 날 때 엄청나게 먹어서 지방으로 저장하고 먹이가 없는 긴긴 겨울을 저장된 지방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원숭이, 유인원, 인간이 유전자 변이로 인해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는 그대로인데 손만 뻗으면 과당이 풍부한 음식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게 된 현대에 들어와서는 섭취한 과당이 거의 모두 지방으로 변환되는 바람에 심각한 비만을 초래하고 통풍과 같은 질환을 유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단순당인 포도당과 과당에 대해 알아봅시다. 포도당은 섭취한 후 20퍼센트만 간으로 가며 나머지는 에너지원으로 쓰입니다. 포도당을 세포 속으로 넣어 주기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게 되며 인슐린은 포만감을 느끼는 렙틴 호르몬을 자극하여 숟가락을 놓게 만듭니다. 반면 과당은 아주 일부만 에너지로 쓰이고 나머지는 모두 간에서 지방으로 변환된 다음 몸에 저장이 됩니다. 또 렙틴을 자극하는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으므로 식욕이 억제되지 않아 끝없이 먹게 만듭니다.
과체중인 성인에게 하루 총 에너지의 25퍼센트에 해당되는 포도당과 과당으로 만든 음료로 각각 마시게 하였더니 12 주 후 두 그룹 사이의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포도당만 먹은 그룹은 체중만 증가한 반면, 과당으로 섭취한 그룹은 체중 증가는 물론, 내장 지방이 더 많이 생겼고, 인슐린 저항성이 더 심해졌으며, 간에 지방이 더 많이 쌓였고, 저밀도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 수치가 더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과당은 몸에 무조건 좋지 않을까요? 과당도 과일이나 채소의 형태로 섭취하면 식이 섬유와 같은 영양소로 인해 몸에 서서히 흡수되며 적당량만 먹으면 포도당의 처리과정을 원활하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제된 과당을 섭취하면 인체의 처리 한도를 넘어서면서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되지요.
그런데 지난 사십여 년간 과당의 섭취가 놀랄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옥수수를 가공 처리하여 액상으로 과당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경우 옥수수를 키울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바람에 옥수수가 엄청나게 과잉생산이 되었고 남아도는 옥수수를 이용하여 액상과당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액상과당은 전통적인 설탕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 데다가 농축되어 운반이 편했기 때문에 1975년 도입된 이래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액상과당은 설탕만큼 단 맛을 내면서 가격마저 저렴하여 안 쓰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널리 활용됩니다. 비만을 비롯한 온갖 질환을 유발하는 원흉으로 액상과당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거의 모든 액상과당은 유전자조작 옥수수에서 추출되었기 때문에 향후 어떤 재앙을 초래할 지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되어 있어 몸에 흡수될 때 시간이 걸리는 설탕과 달리 액상과당은 과당과 포도당이 따로 있기 때문에 흡수율이 훨씬 빨라서 혈당을 더욱 급격하게 치솟게 만듭니다.
비만과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액상과당과 설탕의 소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나 최근에는 크리스탈라인 과당(crystalline fructose)이라는 새로운 액상과당이 소프트 드링크 음료 같은 가공식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존 액상과당의 과당 함량을 2배나 초과하는 99.5 퍼센트 순수 과당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기존 액상과당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일으킵니다. 순수 과당이므로 더욱 건강한 식품이라는 문구로 선전하고 있어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 것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통풍 환자는 과당, 특히 액상과당의 섭취에 아주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과당이 왜 통풍에 최악의 식품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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